수필

평준화될 수 없는 사람들

아침햇살로만 2006. 6. 16. 10:18

 

                                                       평준화될 수 없는  사람들


   막 떠나려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나를 위해 마련된 듯한 자리 하나 있어 털썩 앉고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어디론가의 목적지를 향해 말없이 앉아 있는 사람들. 왼편부터 하나하나 감상하기 시작했다.

 

꾸벅꾸벅 조는 아저씨는 몹시 피곤했나 보다. 잠시 후면 머리가 오른편 사람의 머리에 닿을 듯 하다. 오른쪽의 학생은 닥쳐올 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신문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분홍빛 신문 색깔이 곱다. 그 속엔 훈훈한 미담만이 존재할 것 같다. 쇼핑백을 모로 놓을 정도의 공간을 남기고 머리 숙인 다이아몬드 무늬 스타킹의 아가씨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동도 안한다. 뚫어지게 포개진 자신의 손만을 응시하고 있다. 똑바로 앉아 이쪽을 흘금흘금 훔쳐보는 내 또래의 여자. 가끔씩 눈동자가 마주친다. 아니, 마주치기 직전에 내 눈이 피한다. 머쓱해져서는 시선을 위쪽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재미난 광고가 있다. 대충 훑어보고는 다시 그 여자에게. 이제는 졸고 있다. 그 옆에는 커다란 꾸러미를 다리 사이에 고정시키고 어디론가 전화하는 아저씨, 아마 이 도시 사람이 아닌 듯싶다. 이제 맨 오른편, 단정히 가르마를 탄 윤기 흐르는 머리칼의 소유자는 무릎에 놓인 책을 읽는 중이다. 가히 아름답다 할 수 있다.

 

문이 열리고 내린 사람은 없는데 두 사람이 탔다. 한 사람이 쇼핑백을 모로 놓을 만한 그 공간 앞에 섰다. 망설이는 듯 잠시 시간이 흐른다. 결심한 듯 몸을 돌려 엉덩이를 들이민다. 신문 소리가 난다. 옆으로 사람들의 몸이 움직인다. 드디어 공간이 생겼다. 연쇄적인 움직임에 잠자던 사람이 깼다. 짜증난 듯 끼어든 사람을 여러 번 쳐다본다. 일단 들이민 엉덩이로 인해 좀처럼 생기지 않을 것 같던 공간이 생겼다.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여행객이 많이 왕래하는 지역의 길목에 터를 잡고는 지친 여행객을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맛난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했는데 그 잠자리가 특이했다. 침대 사이즈가 누구에게나 꼭 맞았기 때문이다.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프로크루스테스는 여행객을 침대에 눕히고 침대보다 몸이 긴 사람은 다리를 자르고, 반대로 짧은 사람은 잡아 늘였다. 이렇게 하고는 여행객의 짐을 강탈했다. 그의 집에 들어선 사람은 누구나 주인이 제공하는 침대 평준화에 맞아야 했다.

 

들쑥날쑥한 비 평준화된 키를 고르게 만들고 싶은 꿈을 가진 프로크루스테스. 그는 어쩌면 평준주의자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실현 불가능한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신의 침대에서 똑같은 수법으로 보복당한 후에나 알았을까.

 

생각이 멈추고 다시 앞을 바라보는데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생소한 역 이름.

아뿔싸, 목적지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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