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쿨(cool)

아침햇살로만 2006. 6. 16. 10:04
 

                                                                     쿨(Cool)


두 달간의 여름방학을 맞아 일시 귀국한 아이 입에선 ‘쿨’이라는 용어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출국장에서 끈덕지게 따라붙는 내게 한번 더  ‘엄마, 쿨’ 하고 떠났다.

처음엔 그 애가 3년간의 외국물을 먹어서인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귀에 익고서야 문자와 언어소통이 있는 곳에선 이미 깊숙이 자리 잡은 용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리와 정의 정서로 살아 온 기성세대는 쿨(Cool)처럼 ‘시원하게, 서늘하게’로 인간관계를 끌어가거나 맺을 수 없다. 뜨겁다 못해 화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신세대들은 쿨하게 시작해서 쿨하게 맺는다.

인기 드라마를 지탱하는 정서도 단연 쿨이다. 쿨하게 동거하고 쿨하게 바람피우고 쿨하게 사랑과 이별을 한다. 여기에서의 쿨은 영어 사전적 정의보다 감정의 기복을 절제하기. 냉정함과 자기 조절능력 잃지 않기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긴긴 결혼생활을 시작하기에 앞서 서로 맞는 배우자감인지 알기 위해 동거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혼인 커플 세 쌍 중에서 한 쌍 꼴로 이혼한다는 위기에 적절한 논리일 수도 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쓴 소설가 이만교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사랑은 소비적인 것이 아닌 생산적인 것이다, 섹스나 육체에 한정되면 쿨해질 수 없다, 더 발전적인 관계를 찾아 떠나는 상대방을 가슴 아프지만 보내주는 것이다, 라고.

그러나 개인적 감성으로 느끼는 진실이 같을 수 없는데 합일점을 찾아내기란 쉬울 것 같지 않다. 나는 분명 이 부분에서 쿨할 수 없을 것이다.

풍경처럼 전화기 옆에 놓여 있던 전화번호 수첩이 있었다. 연초에 달력과 함께  상가협회 같은 곳에서 배달해 주곤 했었다. 친지들 전화번호를 이름과 함께 새 곳에 옮겨 쓰는 것은 새해를 맞이하며 통과의레와 같은 일이었다. 일 년간 볼펜으로 아무렇게나 직직 그어가며 고치거나 삽입했던 나만의 메모 따위를 새 곳으로 옮겨 정리할 때면 제법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휴대전화기에 가족 개개인의 필요대로 입력한다. 기억번지에 저장하고 필요에 따라 지워버리기도 한다. 지워버린 정보는 머릿속에서 하얗게 잊혀져 간다. 사랑하다 헤어지면 기억번지에서 존재를 지우고 머리로도 쿨하게 잊는다. 가슴에 난 상처도 오래 갈 리가 없다. 상처 안 주고 안 받기를 추구할 뿐이다.

중학교 때 하이네의 시에서였을까. 공주는 목욕을 하고 근위병은 뒤로 돌아서 그 현장을 지키고 있다. 물소리만 내던 공주가 묻는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그 때의 공주의 목소리는 감정이 실리지 않은 건조함이었다. 서로 얽힐 일이 없고 궁금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물어주는 것. 그것도 쿨일까마는 난 시에 드러나지 않은 근위병의 입장이 되어 가슴이 아렸던 기억이 있다.

이 번 추석 때는 선물 안 주고 안 받기 문화가 슬며시 고개를 쳐들었다 한다. 선물 받겠느냐고 택배 회사에서 전화하면 쿨하게 ‘노’. 정치권의 영향이나 불경기 탓이겠지만 기브 앤 테이크 정서로 계산해 볼 때 차라리 주지 말고 받지 말자로 결론을 끌어낸 것이다.

‘세상이 미워요’라고 절규한 14세 소녀가 있다. 30여명의 ‘오빠’와 ‘아저씨’들이 고단한 생활에 지친 이 소녀를 인터넷을 통해 불러냈다. 그들이 쥐어주는 5만원, 10만원으로 정신이상이 된 어머니의 병원비 해결과 동생들을 먹이는 기쁨에 소녀의 죄의식은 차츰 엷어져만 갔다.

그런데 어린 소녀를 얕잡아 보는 어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볼일이 끝난 후 1000원을 주고 간 오빠. 100원짜리 동전 몇 개를 던져주고 간 아저씨를 가리켜  ‘약속도 안 지키고 욕심만 채우는 어른들이 밉다’고  소녀는 말한다. 길가에 핀 꽃이니 함부로 꺾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쿨하지 않은 사고이다.

용건이 있어 남편의 핸드폰에 전화를 거니 귀에 익은 벨소리 대신 드라마 ‘보디가드’주제가인 ‘쿨하게’가 흘러나왔다. 처음엔 웃음이 피식 나왔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은 차치하고서라도 맘에 들지 않는 정치, 불투명한 경제, 어지러운 사회 현실 때문이었을까. 그저 후드득 빗소리, 톡 쏘는 사이다 한 모금 같은 쿨을 남편은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물결은 흘러가고 곧 새로운 물결이 흘러온다. 물결은 서로 밀면서 강을 흐르게 한다. 물결이 강을 흐르게 하듯 새로움은 변화라는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농경 사회와 산업 사회를 거쳐 바야흐로 생명공학과 정보기술이라는 화두 앞에 서 있다. 혼합의 시대에 우리는 다양성이나 다원화를 곧잘 이야기 한다. 쿨이 생겨난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맞다. 변화의 시대에 서 있으니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늘 우유부단함에서 자유롭지 못한 난 아날로그도 잊지 못하고 디지털도 좋아 보인다. 계절도 옷을 갈아입을 때다. 머리로는 쿨을, 가슴으로는 뜨거움을 지니고 이 가을 속으로 와락 달려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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