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미우라아야꼬의 가난

아침햇살로만 2006. 6. 16. 09:58

 

                                         미우라 아야꼬의 가난 

                                                        

 ‘미우라 아야꼬’의 에세이 중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어느 날 저녁 남편과 나는 누가 더 가난하게 자랐는지 자랑하기 시합을 벌였다.

“난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우유배달을 했어요. 오빠들은 신문배달을 했구요. 수학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어요.”

“그래도 아야꼬는 나에 비하면 양반이야. 나는 설날과 8월 보름 때 말고는 흰 쌀밥 구경도 제대로 못했다구.”

미우라는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난 말예요. 큰 오빠가 입다만 낡은 오바를 뒤집어 입고 다녔단 말예요.”

미우라는 잠시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말을 잇는다.

“당신 참 훌륭한 아이였군요. 하지만 나도 우리 동네 어떤 여학생이 입던 낡은 오버를 입고 학교에 다녔지요. 깃이 다 닳도록 입고 다니면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순간 나는 여자의 낡은 오바를 입고 추운 겨울을 나는 소년 미우라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사내아이가 입던 옷을 입고 다니던 여학생보다 훨씬 더 안쓰러운 모습으로 말이다.


몇 해 전 노인대학에서 한글을 가르칠 때, 이 한 토막의 글을 교재로 삼은 적이 있다. 돌아가며 띄엄띄엄 읽고 이야기하는 중에, 시나브로 모두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대놓고 엉엉 울던 할머니도 있었다. 눈물을 닦아내던 검버섯의 주름진 손과 수선화가 곱게 수놓인 흰 손수건의 조화가 내 마음을 흔들던 기억이 난다. 

 

현재 몸담은 국어학원에서 전영택의 ‘화수분’이라든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수업하던 날, 아이들에게 이 글을 읽어주었다. 개중에는 고개를 떨구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개는 읽기 전과 다름없는 해맑은 표정이었다. 지긋지긋한 수학여행을 안 가서 좋겠다는 아이도 있었고, 심지어 큰 오빠의 낡은 오바를 뒤집어 입고 다녔다는 대목에서는 푸하하하 웃는 아이도 있었다.

 

‘삶이란 죽어라고 사들이고 죽어라고 버리는 과정이다’라는 문구가 있다. 대중매체는 쉴 새 없이 새 물건을 광고하고 소비자는 각인된 정보에 따라 끊임없이 구매하는 시대에 어울리는 말이다. 텔레비전 광고는 기본이고, 인터넷은 백화점보다 더 다양한 상품을 갖추고 클릭을 유도한다. 신문에 끼워져 오는 전단지의 양도 많아서 새벽에 집어 올릴 때면 묵직하다. 백화점은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하려고 이런저런 선물공세를 편다. ‘개성’이니 ‘유행’이니 ‘첨단’이니 하는 말은 근사하게 다가와 헌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라고 유혹한다. 인생은 짧으니 편하게 사는 것이 어때, 라고 속삭이기도 한다.

 

새 물건을 살 때는 마음이 두둥실 떠오른다. 총알택시라도 타고 집에 가서 입어보고 걸쳐보고 선반에 놓아 보고도 싶다. 그러나 그 물건꼴이 보기 싫어지면 한시라도 빨리 해치우고 싶어진다. 죽어라고 사들이고 버리는 과정이 역시 나에게도 되풀이 되고, 매주 목요일마다 분리수거함은 이런 희생양들로 넘쳐난다. 새 것에 열광하고 쉽게 싫증내는 나의 경박함을 미우라 아야꼬 부부의 대화를 통해 반성해야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가난을 겪지 못했다고 푸하하하 웃던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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