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의 길
-이청준의 ‘소문의 벽’에 대한 분석-
1. 들어가는 말
누구에게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청준의 단편소설「소문의 벽」이 편하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다. 현대인의 복합성을 묘사하는 이청준의 사유가 낯선 세계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의 기능과 역할면에서 갈수록 그 진정성이 퇴색한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증명하듯 독자의 기호에 맞춰 쾌락적 기능에만 충실하거나, 아예 기존의 경향을 바꾸는 작가들도 있다.
그러나 작가 입장에서 근원적인 성찰이 없는 문학행위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안목이 결여된 자동적이며 습관적인 글쓰기로 전락할 수 있다. 더 나아가면 문화적 권력의 달콤함과 부가적인 이득에 편승하는 전략적인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문학작품을 읽으며 독자가 추구하는 것은 각기 다를 것이다.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의식을 문학을 통해 들여다보기를 원하는 독자층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소문의 벽」은 읽을 때마다 인식의 단면이 늘 새롭게 빛나는 작품이다. 먼저 작가 이청준이 소설을 창작한 그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고, 작품을 이루는 요소들을 통해 지금껏 당연히 받아들여진 현상이나 질서의 틀을 만드는 권력이 지닌 힘의 논리를 살펴보겠다. 세상의 소문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문학인으로서 이청준의 사유에 동참하고자 한다.
2. 작가 소개
이청준(1939 ~ )1) 은 소설가로 전남 장흥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했으며 1965년 『사상계』에 단편 「퇴원」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다. 창작집으로는『별을 보여 드립니다』『소문의 벽』『살아있는 늪』『비화밀교』『키 작은 자유인』『가해자의 얼굴』『서편제』『섬』등이 있다. 장편소설로는「당신들의 천국」「낮은데로 임하소서」「춤추는 사제」「이제 우리들의 잔을」「흰옷」「축제」등이 있다. 그밖에 동화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를 비롯하여 판소리 다섯마당을 동화로 풀어쓴「놀부는 선생이 많다」「토끼야, 용궁에 벼슬가자」「심청이는 빽이 든든하다」「춘향이를 누가 알랴」「옹고집이 기가 막혀」를 포함한 많은 작품이 있다. 동인문학상, 한국일보 창작문학상, 이상문학상, 중앙문예대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21세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3. 작품서지
이청준의 「소문의 벽」은 1971년 『문학과 지성사』에 발표된 중편소설이다.
4. 줄거리
작중화자인 ‘나’는 잡지사 편집장이다. 술에 취해 밤늦게 귀가하다가 한 남자의 간청을 외면하지 못하고 집으로 데려간다. 이튿날 하숙방에서 밤새 함께 잤던 그 남자가 사라진 것을 알고 나는 정신병원으로 향한다. 밤새 전등불을 켜놓던 것을 비롯해 보통사람이라고는 여길 수 없는 행동들 때문이었다. 그 남자가 진술공포증으로 입원한 환자 박준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소설가 박준을 떠올리고 동일인물이라고 믿게 된다. 새삼스럽게 박준의 소설에 관심을 갖고 읽는데 몰두하다, 나는 그곳에서 모든 실체를 발견한다. 박준이 두려워하던 전짓불이 그에게 어떻게 작용하였나를 파헤친 것이다. 그러나 박준의 주치의 김박사는 자신의 치료방법을 바꾸지 않는다. 박준은 다시 사라지고 나는 자책의 괴로움에 빠진다.
5. 1960년대 배경과 「소문의 벽」
1960년대는 모순과 갈등의 시대였다. 식민지와 6·25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민중들은 민주사회로의 열망을 4·19에 담았으나 5·16군사쿠데타로 좌절된다. 이로 인해 정치사회적 혼란이 가중되며 극심한 경제난이 시작되었다. 중반이후에는 경제개발 개발에 박차가 가해지고 근대화 작업이 펼쳐지게 된다. 이른바 산업사회가 막을 연 것이다. 군사독재로 인한 억압과 근대화 물결의 틈바구니 속에서 도시는 거대화되고 그에 비례해서 물질만능주의, 한탕주의, 개인주의 등 부정적 측면도 팽배해졌다.
이로 인해 문학의 경향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선 문학의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이 거론되고, 사회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인간성 말살에 대한 비판이 현실참여문학으로 나타났다. 그런가하면 역으로 문학의 순수성을 고집하는 경향도 있었다. 1939년생인 이청준은 전쟁과 혁명의 체험을 몸소 겪은 세대다. 따라서 그 현실감각의 바탕 위에 자신만의 사유를 더해 독특한 문학세계를 열어간다.
이청준은 작가이기에 소설로 말을 하기 위해「소문의 벽」에서 상징적인 소재를 사용하였다. 전짓불은 6·25전쟁이 그에게 남긴 상흔 중에 핵이 되는 소재이다. 또 이청준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의사와 정신병환자는 억압으로 고통 받는 민중과 고통의 근원은 덮어둔 채 밀어붙이는 권위의식을 폭로하고 비판하기 위해 설정된 존재이다. 진술은 이청준이 당면한 현실 속에서 작가로서의 상처와 갈등, 자세로까지 의미가 확대된다.
6. 작품분석
6.1. 전짓불의 상징과 이해
누구나 어둠을 밝혀 주위 사물을 분간하는 주체로서 전짓불을 사용하길 원한다. 그런데 ‘전짓불’이「소문의 벽」에서는 낯선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것으로 인해 오히려 자신이 감지당하는 입장에 놓이고, 잠깐 동안에 상대방을 헤아리고 그 편에 서기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 전짓불이라는 소재가 이청준에 의해 공포의 분위기로 거듭난 것이다. 이는 출구가 안 보이는 숨 막히는 정치적 억압현실을 상징적으로 그려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사회를 지배하는 힘의 논리를 바라보는 이청준의 시각에 비판의식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권력은 비대해지면서 폭력을 행사하게 되며, 표현의 자유를 확보해야 하는 작가에게는 고통을 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6.2. 정신병
소설이 허구의 세계라고 하더라도 작가의 삶의 체험이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법이다. 이청준은 다수의 작품에서 광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다. 정신병을 앓는 광인을 이청준이 주위에서 체험했는지를 확인한 바는 없다. 중요한 사실은 이 일상적이지 않은 소재를 통해 민중들이 자신의 일상적인 현실을 들여다보기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정신병을 구분 짓는 틀처럼, 사회를 지배하는 통념이 개인의 자유를 얼마나 구속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인간 개개인을 사랑하는 이청준의 열린 마음의 발로이며,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부분일 것이다. 작가가 문학기법 자체를 다양하게 시도하는 것보다 한 가지의 모티프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창출해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측면에서 살펴볼 때에, 정신병이라는 모티프로 여러 소설을 쓴 점을 높이 살만하다.
6.3. 진술과 작가의식
신문관은 박준에게서 진술을 받기 위해 전짓불을 들이대고야 만다. 치명적 상처를 건드려서 파생될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채 자신의 방식으로 목적을 달성하려한 것이다. 이 폭력의 희생양이 된 박준과 이청준을 동일시하고 진술과 글쓰기를 대입시키면, 소설가인 이청준은 끊임없이 진술을 강요당하는 고통 속에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회피하기보다는 어떤 상황이라도 올바른 진술의 길을 열어가겠다고 말하고 있어, 어떤 소문이나 어떤 억압이 와도 자유로운 표현을 하는 작가의 길을 가겠다는 다짐으로 여겨진다. 한편으로는 권력과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바로잡겠다는, 작가의식의 저변에 깔려있는 우월감을 엿볼 수 있다.
7. 결론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소문의 벽」을 분석하며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이청준은 전짓불을 통해 우리가 가진 선입견과 상투적인 사유를 산뜻하게 뒤집음으로써 새로운 인식에로의 출구를 제공해준다.
둘째,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종용한다.
셋째, 나아가 문학사회의 바람직한 풍토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장이 되고 있다.
이청준은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곳곳에서 난무하는 소문의 허상에 놀아나기보다 당당하게 자기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책을 덮으며 ‘문학인으로서 진정한 자유의 길을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까지 작가의 운명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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