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

가을의 노래

아침햇살로만 2010. 12. 23. 23:44

                       가을의 노래

 

                                                   - 김재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면 가을이다

떠나지는 않아도 황혼마다 돌아오면 가을이다.

 

사람이 보고 싶어지면 가을이다

편지를 붙이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주머니에 그대로 있으면 가을이다.

 

가을에는 마음이 거울처럼 맑아지고

그 맑은 마음곁에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떠보낸다

주여! 하고 하지 않아도 가을엔 생각이 깊어진다.

 

한 마리의 벌레 울음소리에 세상의 모든 귀가 열리고

잊혀진 일들은 한 잎 낙엽에 더 깊이 잊혀진다

 

누구나 지혜의 걸인이 되어 경험의 문을 두드리면

외로움이 얼굴을 내밀고 삶은 그렇게 아픈거라 말한다.

그래서 가을이다.

 

산 자의 눈에 이윽고 들어오는 죽음.

사자들의 말은 모두 시가 되고

멀리 있는 것들도 시간 속에 다시 제자리를 잡는다.

 

가을이다.

가을은 가을이란 말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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