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의 시에 대한 새로운 이해
1. 들어가며
정지용은 결코 먼 곳에 있는 시인이 아니었다. 그의 「鄕愁」는 시라기보다 편안한 노랫말로써 정감 있게, 「유리창」은 소중한 존재를 잃은 자의 비통함을 유리처럼 투명하고 맑게 내게 호소해왔다. 그의 다른 시에서도 특유의 맑음이 기본적으로 흐르고 있었지만, 사물을 꿰뚫어보는 투시력, 경우에 따라서는 세상과의 격리가 느껴지기도 해서 계속해서 ‘유리’의 이미지는 지울 수가 없었다.
시문학파 동인들 중에서 정지용(1902. 5 ~ 1950. 6·26당시 납북)은 1930년대 우리 시단을 명실상부하게 대표한다. 그의 시세계는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현대시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까지 하는 시사적 의미를 점하고도 있다. 1941년 탄생된 「정지용 시집」은 감성과 지성의 조화라는 새로운 시맥의 지평을 열게 된다.
정지용의 시세계를 통시적으로 네 단계로 나누는 관점에서는「鄕愁」를 통해 동심이 나타나는 초기의 시세계, 「바다」에서 감각적 이미지의 세계를 구축하는 시세계가 두 번 째, 「산」에서 볼 수 있는 자연과 인간과의 동화가 그 세 번째, 마지막이「8·15광복 후 순수문학을 탈피하여 사회참여의 의도와 자아성찰을 내보이는 세계이다. 이 네 단계의 시세계를 차례대로 살펴보며 정지용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
2. 「향수」와 「고향」에 나타난 분위기와 이미지
정지용의 일련의 시에는 소박한 향토 정조가 기반으로 쓰였다. 가족에 대한 애착이 나타난 가족사적 세계는 자연에 대한 친화감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정신적 거처가 된 고향은 유년시절의 꿈이 배어있는 곳이며 고매한 시창작의 밑거름이 된다. 시인의 동화풍이나 민요풍의 시편들은 모두 농촌의 순박한 토속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특히 우리말을 순탄하게 구사하는 기교는 그리움의 정서를 강하게 드러내는 분위기 효과까지 낸다.
고향의 역사적 의미와 현실적 의미를 융합시킨 「鄕愁」에서는 고향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우리말을 효과적으로 엮는다. 한 눈에 들어오는 고향은 ‘옛이야기’가 살아있는 역사의 터전이며 가난하고 고달픈 삶이 ‘따가운 햇살’이 되어 눈을 시리게 한다. 그곳은 그에게 ‘도란도란 거리는’ 유토피아도 된다.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는 고향을 지키는 농민의 보편적인 삶의 표상이기에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존재가 된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 우는 곳’으로 차마 꿈엔들 잊힐 수 없는 추억 속의 고향이 현실화될 때, 실제로 찾아간 고향은 그가 그리던 고향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꿈에 그리던 고향과 현실로 다가온 고향의 거리감은 좁히기 어려운 것일까. 시 「故鄕」에서 ‘마음은 제 고향 지나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이라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또 돌아온 고향에는 다만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다고 시인은 탄식한다. 고향에 존재하는 자연물인 산꿩, 뻐꾸기, 꽃, 하늘의 이미지가 정착과 불변의 이미지인데 반해 ‘떠도는 구름’은 떠남의 이미지이다. 이 두 이미지의 대응은 실향민의 애환을 짙게 그려낸다.
3. 감각적 이미지즘의 세련미와 신앙시
감각적 표현을 특성으로 하는 정지용의 시세계는 시각적 이미지의 치밀한 구축을 통해 이국정조를 드러내기도 한다. 고향을 떠나 내놓은 「카페· 프란스」에서는 서구의 이질적인 용어들을 선보인다. 또 이미지의 형상화를 위한 고도의 절제기법을 사용한다.
「바다 1」에서 정지용은 바다가 출렁이는 모습을 천막이 펄럭이는 것으로 표현하고, 바다 종달새들이 나는 모습을 은방울 날리는 것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눈에 들어오는 사물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참신한 감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상상력의 소유자인 정지용은 사물의 정보를 눈으로만이 아닌 온 몸의 감각을 총동원해 관찰했다.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사유하는 통찰력은 결코 자신의 시를 표층적 차원에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고향의 안락함이나 이국적 정조에 안주할 수 없었던 정지용은 결국 카톨릭에 귀의한다. 종교적 색채를 띤 첫 신앙 시 「그의 반」이 탄생되며. 이제 시의 공간은 ‘그(신)’가 있는 초월적 공간으로 향한다. 「故鄕」이나 「鄕愁」를 떠올리던 자연물이 이 시에서는 신의 세계를 향한 상징으로 사용된다. 「臨終」을 통해서는 고해성사를 하기도 한다. ‘얼굴이 바로 푸른 하늘을 우러렀기에 발이 항시 검은 흙을 향하기 욕되지 않도다’라고 한 「나무」에서는, 비루한 현실과 초월적 세계 사이에 서 있는 신앙인의 구원을 향한 태도를 볼 수 있다.
4. 無爲自然의 경지
고향을 그리워하는 동심의 세계를 노래한 초기 시편들이나 서구의 이미지즘, 신앙 시에서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정지용은 자연에 대한 관조로 이 세 번째 시세계를 열어간다. 이 단계의 시 역시 평범한 제재를 선택하면서도 적절한 표현과 절묘한 묘사를 구사하고 있다. 시인이 자연의 본성에 지향된 자세를 갖고 있다고 여겨진다.
정지용은 한라산을 오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자 한다. 장시「白鹿潭」을 비롯한 ‘산’의 시편들에서는 자연의 본성에 안주하고 동화되고자 하는 시인의 삶의 자세가 투영되어 있다. 한라산에 존재하는 풀, 나무, 새, 바람, 물, 구름 등의 자연물은 시의 의미를 구성하는 요체가 되며 순수함의 가치를 지닌다. 시인에게 있어 자연은 생성의 존재, 또 스스로 변화하는 존재이며 몰입하고픈 대상이 된다. 이 생성은 소멸의 다른 이름이다. 죽음을 초월할 수 있기에 시인의 맑은 눈은 관조적일 수 있다. 시구 ‘좇겨운 실구름 一抹에도 白鹿潭은 흐리운다’에서 맑고 깨끗한 경지를 시의 화자가 고귀한 가치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수산」은 달, 보름, 중이라는 시어를 통해 동양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시이다. 고요와 적막 속에 시인이 도달하려는 경지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겨울 산에서 ‘시름’은 우는데 견디겠다고 하여 시대상황이 주는 압박감으로부터 피하고 싶어 하는 자세로 보이기도 한다.
5. 말년의 시세계
순수함과 감각적 이미지의 세계를 펼치던 정지용은 8·15광복과 함께 다시 거듭난다. 「정지용시집」두 번째 시집「白鹿潭」간행에 이르기까지 순수한 시의 경지와 감각적인 언어구사로 일관하던 정지용은 의식적으로 시풍을 바꾸기에 이른다. 이 말년의 창작을 하던 시기에는 사회참여에 적극성을 띠며 시대적 상황을 비판하는 시를 쓰지만 담긴 시편의 수가 제한되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일제말기라는 어두운 시대상황을 표현한 「窓」과 일제의 강요로 징병당해 죽은 넋을 위로하는 「異士」를 통해 일제 탄압의 극한을 시인 나름대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8·15광복의 감격의 기쁨은 「애국의 노래」와 「그대돌 돌아오시니」에 새롭게 묘사하고 있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분단을 맞이해야 하는 운명적인 비애를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게 된다. 시「曲馬團」에서는 질곡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이 곡마단의 아찔한 곡예와 다를 바 없다는 자조적 체념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다. 이 삶에 대한 회의는 자아성찰을 낳게 되기도 한다.
정지용의 의욕적 사회참여와 자아성찰의 작품은 「곡마단」이나 「四四調五首」을 끝으로 중단되고 만다. 납북이라는 비극적 운명의 행로가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는 정지용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통용되는 것이리라.
6. 나가며
정지용이 6·25 당시의 행방불명으로 작품의 출판이 금지되었다가 1987년 해금조치로 다시 출판에 이른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시세계는 세 가지 경향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첫째는 이국정서에 기반을 둔 정지용의 동적인 세계이며, 둘째는 전통적인 향토정서의 세계, 셋째는 카톨릭에 귀의하여 구원의 문제를 종교시로 승화시킨 세계이다. 이번 논고에서는 네 단계로 나눠 정지용의 시세계를 살펴보며 그에게 더욱 다가가게 되어 다행이다.
그의 작품들에서 감각적 특성이 우세하다 못해 감정의 절제에 신경 쓰느라 기교에만 치우친 듯한 인상도 받았으나, 감정의 절제가 있을 때 비로소 시가 시다워진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제 식민지의 민족의 수치와 고난을 서정적으로 승화시킨 시를 통해서는 지식인의 고뇌가 그대로 전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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