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변기에는 넣을 수 없어

아침햇살로만 2006. 6. 15. 22:18

 

                                                                   변기에는 넣을 수 없어

 

                                                조일영. 2005. 월간문학 동화신인상 당선작


   마지막 수업시간이 끝났습니다.

나는 책상 위의 책과 필통을 가방 속에 넣고 재남이와 함께 실내화를 갈아 신었습니다.

운동장에는 뛰어가는 아이들로 인해 모래구름이 피어오릅니다.

담벼락 앞의 철봉에는 흰 체육복 입은 형과 누나들이 매달려 있고 그 옆에서 체육선생님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계십니다.

“재남아, 천천히 가.”

재남이는 운동장에만 서면 걸을 줄 모르는 사람처럼 냅다 달립니다. 그렇다고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잘 하는 것도 아닌데 길에선 늘 달립니다.

교문을 향해 걸어가며 나는 오른쪽 바지 주머니를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대로 만져지는 물체에 적이 마음이 놓입니다.

“민수야, 공부 잘 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

어제 할아버지 생신이라 엄마, 아빠와 함께 시골에 갔을 때 큰아버지가 주신 돈입니다.

나는 아빠 차를 타고 집으로 오며 몇 번이나 엄마한테 돈을 드릴까 망설이다가 참았습니다.

어른들이 준 돈을 엄마한테 보고하면 그대로 압수하시기 때문입니다. 통장에 넣어두었다가 대학 갈 때 쓰신다나 뭐 그러십니다.

나도 당연히 지폐는 아이들이 쓸 수 없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껏 엄마한테 바쳐왔습니다. 그런데 어제 큰아버지가 내게 돈 주실 때 엄마는 부엌에서 부침개를 하느라 못 보셨지요.

나는 어제 입었던 바지를 잘 두었다가 오늘 그대로 입고 왔습니다.

교문 앞에는 자주색 점퍼를 입은 아저씨가 보입니다. 아저씨는 요즘 며칠 째 학교 앞에 계십니다. 겨울에는 붕어빵 아주머니가 있던 자리인데 그 아주머니는 리어카를 끌고 어디론가 가버리셨나 봅니다.

뜨거운 팥이 ‘찍’ 나오는 붕어빵 대신 이번에는 자주색 점퍼 아저씨가 진짜 붕어, 살아있는 붕어를 가져오셨습니다.

투명한 유리 어항에는 주황빛 붕어가 요리 갔다 조리 갔다 미끄러지고 다닙니다. 햇빛은 하늘에서 붕어에게만 마구 빛을 쏘아대는지 유리 어항은 반짝반짝하고 이제 붕어는 금빛 왕관을 온몸에 두른 황금붕어가 되었습니다.

“자, 학생은 공부를 잘해야 하는 거 너희들 알지. 오늘 아저씨가 가져온 붕어는 공부는 못하지만 건강하니 많이들 사가서 키워 보거라. 붕어 키우는 재미 좋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돈을 꺼내 아저씨한테 내밀었습니다. 금붕어 두 마리와 포장된 먹이도 샀습니다.

'플럭플럭'

금붕어는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가만히 있다가도 봉지 소리를 내는 게 아마 아까처럼 요리조리 움직이나 봅니다.

집 쪽으로 걸으며 비로소 재남이가 가버렸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재남이와 난 이런 식으로 인사 없이 헤어지는 적이 많습니다.

오늘은 놀이터에 노는 아이가 아무도 없네요. 푹푹 발이 빠지는 모래 위를 걸을 때는 플럭플럭 비닐봉지 소리가 더 요란합니다.

등나무 의자 옆으로 주욱 뻗은 길을 따라 가면 우리 아파트가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에 내렸습니다. 그리고 목에 걸린 열쇠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회사에 다니는 엄마는 아침이면 학교 갈 준비 끝난 나와 함께 나서며 마지막으로 목에 열쇠를 걸어주십니다.

“학교 갈 때 한 눈 팔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가끔 열쇠가 잘 매달려 있나 만져 봐라. 안녕. 엄마 간다.”

그런데 나는 한눈을 팔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은 구경거리가 너무 많아서 그것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먼저 설탕과자가 있습니다. 불 위에 놓인 국자에서 설탕이 녹기까지는 잠시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한쪽에서 녹기 시작하면 이 때부터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잠깐 사이에 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젓가락으로 빙빙 원을 돌려 젓다가 재빨리 하얀 가루를 넣고는 국자를 들어야 합니다. 이 때도 계속 젓고 있어야 하는 건 물론입니다. 할머니는 그것을 판에 붓고 납작하게 꾹 누르고 모양을 찍습니다.

별 모양, 병아리 모양, 다이아몬드 모양이 새겨진 설탕과자는 저마다의 주인을 기다립니다. 형들이 가방 벗어 놓고 길에 앉아 모양대로 오려낼 때면 나 역시 가슴이 졸여지지요.

간혹 솜사탕 아저씨도 교문 밖에서 아이들을 반깁니다. 빙빙 돌아가며 분홍색, 흰색의 부푼 솜덩어리를 만드는 기계를 보면 그냥 갈 수가 없습니다. 나는 설탕 태풍에 뚱뚱하게 살 입혀지는 저것을 입에 놓고 사르르 녹여보고 싶습니다.

아, 돈은 들지 않지만 내 눈을 붙드는 것들이 또 있지요. 가을이면 원일 유치원 담 밖으로 뛰쳐나온 감나무 가지엔 감이 잔뜩 매달려 있어 꼭 하나만 따고 싶어진답니다. 그러나 마음뿐입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감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다람쥐가 사뿐 풀숲 사이로 몸을 숨길 때 내보인 알록달록한 꼬리를 잡으러 따라간 적도 있습니다. 놓친 다람쥐를 아쉬워하며 도토리를 주우러 두리번거린 적도 있습니다.


휴, 가방을 대충 벗어놓고 비닐봉지를 유리그릇에 대고 쏟았습니다. 물과 함께 금붕어 두 마리는 유리그릇에 담겨졌습니다.

붕어는 멈춘 듯 하다가도 꼬리를 요리조리 흔들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두 마리는 부딪치지 않게 자리를 잘도 바꿉니다.

“얘들아, 배고프니? 형아가 밥 줄게.”

아저씨한테서 사온 금붕어 밥 봉지를 뜯어 손으로 한웅큼 집어냈습니다. 물 속으로 뿌리려는데 전화벨소리가 울립니다.

“민수야, 왜 이제야 전화 받니? 엄마가 여러 번 전화했는데…….또 어딜 기웃거렸니? 냉장고 안에 빵 꺼내 먹어라. 우유도 한 컵 꼭 마셔야 한다. 참, 손은 씻었니? 더러운 손으로 냉장고 열면 안 되는 것 알지? 그리고 문제 풀고 있어라. 엄마 일찍 갈 게. 끊는다.”

아 참, 손을 안 씻고 그 손으로 붕어에게 밥을 주다니… …. 난 얼른 화장실로 가 손을 씻기 시작했습니다. 비누를 여러 번 문질러서 거품을 퐁글퐁글 냈습니다.

물을 틀어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헹구며 거울을 보니 얼굴도 씻고 싶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비누거품을 내서 눈을 꼭 감고 씻어냈습니다. 수건으로 닦으니 마음도 날아갈 것 같습니다.

난 다시 붕어에게로 다가가 먹이를 주고는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고운 빛깔의 금붕어가 움직이는 것을 보니 마음이 흐믓합니다. 이럴 때 재남이가 옆에 있으면 지우개, 연필 모두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재남이는 필통 옆구리가 불룩 튀어나오도록 가득 담아 다니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나는 냉장고를 열어 빵과 우유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우유는 먹기 싫어 도로 집어넣었습니다. 지금까지 엄마는 우유를 많이 마셔야 키가 큰다는 말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쯤 했습니다.

내가 다섯 살이었을 때, 우유를 마시지 않았다고 앞에 놓인 컵을 들어 내 머리위로 부어버린 적도 있습니다. 그날 엄마는 화가 많이 난 듯 했습니다. 난 너무 놀라 소리 내어 울지는 못했지만 곧 우유에 내 눈물도 섞여서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그 후 우유을 마시게 되었지만 지금도 썩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이 우유는 큰 통에 담겨서 내가 한 컵쯤 마시지 않아도 엄마는 잘 모를 것입니다.

난 시원한 카스텔라를 먹으며 금붕어에게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이 맛있는 것을 혼자만 먹을 수 없어서 조금씩 떼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우리 가족은 석모도라는 섬에 간 적이 있습니다. 참,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이렇게 셋입니다. 우리는 강화도 쪽으로 가서 섬에 가기 위해 배를 탔습니다. 사람들도 많이 탔지만 타고 온 차를 모두 실을 수 있던 아주 큰 배였지요.

“민수야, 이리 가자. 바다도 잘 보이고 더 재미있단다.”

아빠는 배의 안 쪽 가지런히 놓인 의자로 가지 않고 배의 가장자리로 갔습니다. 그리곤 나를 번쩍 들어 바닷물 속을 들여다보라고 했습니다.

바닷물은 파란색이 아니라 검은색에 가까웠고 굵은 물결이 다가왔다가는 바로 앞에서 사라져버리곤 했습니다. 짠 냄새 같은 것이 코에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사진을 찍는다고 눈을 찡긋거린 채 목을 앞으로 빼거나 뒤로 물러서거나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하늘 가득, 아니 우리 배를 가득 둘러싼 갈매기떼를 보았습니다. 어디서 그리도 많은 갈매기가 모인 걸까요?

“이야, 우리 민수 보겠다고 갈매기들도 서둘러 여행을 왔네.”

“아빠, 아빠, 저기 또 날아와. 아빠, 쟤는 아주 어린가봐. 바로 뒤에 좀 봐.”

“둘이 여기를 보세요. 아니 저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게 낫겠다.”

엄마는 작품을 하나 남겨보려는 듯 카메라를 들고 분주했어요.

드디어 배가 움직이자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일어나 갈매기들을 바라보고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거나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몇 사람들이 들고 있던 과자봉지에서 과자를 꺼내 갈매기에게로 던졌습니다. 신
기하게도 갈매기들은 그 과자를 향해 몸을 재빨리 날려 꼭 입에 넣고야 마는 것이었어요.

우와, 우와, 난 잘도 받아먹는 갈매기들이 신기했습니다. 갈매기들은 우리가 섬에 도착할 때까지 공중에 떠서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내려주고 돌아가는 그 배를 따라갔습니다. 


처음에 모래알만하던 카스텔라 부스러기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과자를 맛나게 채어가던 갈매기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맛있니? 이 형아가 다 양보할 게. 많이 먹어라.”

붕어에게 카스텔라를 떼어주고는 문제를 풀었습니다. 안 풀어놓으면 엄마한테 혼나기 때문입니다. 풀고 텔레비전을 보는데 벨소리가 났습니다. 엄마가 붕어를 보면 안 될 것 같아 서둘러 베란다로 붕어가 든 그릇을 치우고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곤 다음날까지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답니다.


난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현관에 둔 채 베란다로 달려갔습니다.  

붕어가 밤새 살이 쪘다고 생각하며 자세히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붕어는 뻐끔뻐끔 아가미로 숨을 쉬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한 마리는 허리를 꼬부린 모습으로, 한 마리는 그저 둥둥 떠 있었습니다.

"금붕어야, 자는 거니?"

유리그릇의 바닥에는 카스텔라 조각이 퉁퉁 불어 가라앉아 있었고 물도 뿌옇게 색이 변해 있었습니다.

유리그릇을 들고 흔들어보기도 하고 밥을 조심스레 더 넣어 보기도 했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새 물로 갈아주었으나 금붕어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금붕어가 분명히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끄러미 금붕어를 바라보다 재남이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습니다.

“뭐? 붕어가?”

재남이는 잠깐 기다리라며 형에게 물어보겠다고 했습니다. 재욱이형은 중학교 2학년인데 싸움 잘하는 형으로 이 동네에서 유명합니다. 형은 며칠 전 맹장염 수술을 받아 오늘도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형이 재남이에게 하는 목소리가 전화기 속으로 들립니다. 원래 목소리도 크지만 수술을 하고 누워있어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나 봅니다.

"변기에 확 쏟아 붓고 물 내려버리라고 해! 아구구 배 아파. 아구구 나 죽는다."

아니, 아무리 물고기라지만 어떻게 하라구요?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라고요?

난 엄마 얼굴을 떠올리다 화장실로 가서 변기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물을 내리면 꽈르르릉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소변이나 대변을 끌어가버리는 변기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커다란 입 같기도 합니다.

'붕어를 붓고 물을 내린다.'

'저곳에 붕어를 붓고 물을 내린다.'

'저 곳에 붕어를 붓고 물을 내리면 모든 게 감쪽같다.'

'저 곳에 붕어를 붓고 물을 내리면 모든 게 감쪽같다. 엄마도 모른다.'

다시 붕어에게로 갔습니다. 여전히 붕어는 그러고 있습니다.

다시 변기에게로 갔습니다. 여전히 변기는 그러고 있습니다.

식탁 위로 옮긴 붕어를 바라보다 잠깐 엎드렸습니다.


“아니 얘가 식탁에서 잠이 들었네.”

“민수야! 일어나 봐. 엄마 왔다.”

“아니, 이것들은 뭐야!”

나는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식탁위의 붕어를 엄마한테 들킨 것입니다. 

“…….”

“어떻게 된 거야. 웬 붕어고…….”

“엄마…….”

밖에는 어둠이 온 세상을 덮었고 가늘게 내리는 빗소리가 들려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는 내게 잠바를 가져다 입혀주었습니다. 붕어가 든 유리그릇 째 그대로 들고 우산을 챙긴 엄마와 나는 아파트를 내려갔습니다.

우리 동 뒤로 돌아가면 조그만 동산이 있습니다.

“민수 어멈아, 목련꽃봉오리와 벚꽃이 눈을 즐겁게 하는 곳에 사는 걸 복으로 알아라.”

언젠가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가 엄마한테 이렇게 말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나무들이 서 있는 사이, 흙이 도독한 곳에 이르자 엄마가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엄마, 내가 흙을 팔게요. 그 숟가락 이리 주세요.”

흙을 걷어내고 그 속에 붕어 두 마리를 눕혔습니다. 못에서 살아야 할 붕어가 흙 속에 누운 것은 모두가 내 잘못입니다. 다시 흙을 덮으려는데 목에 뭐가 걸린 듯해서 난 침을 자꾸만 삼켰습니다.

엄마는 머리에 우산을 받쳐준 채 내가 하는 것을 묵묵히 바라볼 뿐입니다.

“자, 이제 붕어에게 인사 해야지.”

“붕어 두 마리야, 안녕! 너희들의 천국도 꼭 있을 거야. 그 곳에 가서 마음껏 헤엄치고 살아라.”

비가 그친 것 같다며 엄마는 우산을 접었습니다.

잠깐 올려다 본 하늘이 어둠 속이지만 맑아지고 있었습니다.

얼마 안 있어 목련나무에도 꽃이 필 테고 벚꽃이 눈비처럼 내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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