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

베를린 천사의 시

아침햇살로만 2010. 12. 21. 22:15

 

                                                        베를린 천사의 시

 

   대상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생겨나는 스펙트럼은 무척 다양하다. 감독 빔 벤더스는 독일의 분단도시인 베를린 풍경과 사람들의 내면을 천사의 눈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베를린의 하늘은 우중충한 회색빛 건물을 닮았다. 그 하늘 아래, 도서관이나, 전철 안에는 외모만 다를 뿐, 우리의 일상과 다를 바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가는 무리들이 있다. 희망이란 존재하는가 싶을 정도로 당장 해결해야할 일들만으로도 어두운 얼굴들. 천상의 세계는 천사 다미엘과 카시엘에게 이들을 살피고 기록하는 임무를 내렸다. 검은색 롱코트를 입고 거리를 배회하는 두 천사에게 다가오는 인간세계의 모습은 아픔 그 자체였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야 한다면 이런 생은 한 번으로 족해’는 어느 한 사람의 독백이 아닌 그들 모두가 내뱉고 싶어 하는 말일 것이다. 다미엘이 그들의 어깨를 감쌀 때마다 걱정으로 굳었던 얼굴들은 잠시 후 편한 모습으로 바뀌고, 자살하려던 이조차도 희망의 눈빛을 반짝거리며 일어선다. 미소를 지으며 코트에 손을 찌르고 다시금 길을 떠나는 다미엘. 그러나 그는 이러한 역할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을까.

어느 날 다미엘은 서커스단에서 가짜 날개를 달고 공중곡예를 하는 여인을 발견하며 깊은 연민과 사랑을 품게 된다. 이 여인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천사 같은 인간 마리온이다. 다미엘은 한 인간으로서 마리온을 사랑하고자 했기에 천사로서의 생명을 끝낸다. 천사 다미엘이 천상의 세계를 포기하고 음습한 잿빛 도시를 사랑한 것처럼 감독 빔 벤더스는 진정한 인류에 대한 구원이 먼 곳에 있다고 보지 않았다. 안주할 수 있는 세계를 벗어나 혼탁한 세상에서 타인을 만나고 사랑하는 과정이 바로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본 듯하다.

인간의 자리에 떨어지며 흘리는 피의 붉음, 인간이 되어 추울 때 마시는 커피의 맛, 담배의 맛, 손을 비벼보는 다니엘의 경이로움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처럼 지금 이 순간의 영원성을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