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릴지브란의 <예언자>

주는 것에 대하여

아침햇살로만 2010. 12. 26. 22:28

 

주는 것에 대하여

 

                                                    칼릴 지브란

 

이번에는 어떤 부자가 말했다.

"우리에게 주는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가 대답했다.

 

"그대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주는 것은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주는 것은

그대들 자신을 줄 때입니다.

 

그대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내일 부족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P>

간직하고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또 내일이란 무엇인가요?

성지로 가는 순례자들을 따라가는 개가

자취도 없는 모래밭에 뼈다귀를 묻어둔들

과연 내일이 그 준비성 많은 개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겠습니까?

 

그러면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두려워하는 그 자체가 이미 부족함 아닌가요?

그대들의 우물이 가득차 있는데도 목마를까 두려워 한다면,

그 목마름은 영원히 가실 길이 없지 않겠습니까?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주 조금만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숨겨진 욕망이

그들이 주는 작은 선물 마저도 순수하지 않게 만들어 버립니다.

 

한편 가진 것이 별로 없으면서도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모두 다 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생명과 생명의 풍요로움을 믿는 사람들이며,

이들의 주머니는 결코 비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기쁜 마음으로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기쁨이 곧 이들이 받는 보상입니다.

한편 괴로운 마음으로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괴로움이 곧 이들이 받는 고통의 세례입니다.

 

그런데 주면서 괴로워하지도 않고,

기쁨도 추구하지 않으며,

덕을 쌓는다는 마음도 없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마치 저 멀리 골짜기의 상록수가

자신의 향기를 허공에 날리듯, 그렇게 줍니다.

신은 이들의 손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이들의 눈 속에서 대지를 향해 미소지으십니다.

 

요청을 받았을 때 주는 것,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요청을 받지 않았어도

다만 이해함으로써 준다면 그것은 더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아낌없이 주려는 이에겐

받을 사람을 찾는 기쁨이 주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

 

그대들이 영원히 움켜쥐고 있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그대들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다 내주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주십시오.

주는 때가 그대들의 상속자가 아니라 그대들의 것이 되게 하십시오.

 

그대들은 자주 이렇게 말하지요.

'주겠지만 받을 자격이 있는 이에게만 주겠다'고.

하지만 그대들 과수원의 나무들, 목장의 가축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줌으로써 삽니다.

움켜쥐고 있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지요.

 

진정으로, 낮과 밤을 맞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대들에게 무엇이나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또한 큰 생명의 바다에서 마실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대들의 작은 시내에서 자신의 잔을 채울 자격이 있습니다.

받는 용기와 자신감,

아니, 받아주는 자비심 말고 무슨 자격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저들의 가슴을 찢고

사정없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그대들은 누구입니까?

저들로 하여금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내게 하고

그러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하는 안쓰러운 모습을 구경하는 그대들은

대체 누구입니까?

 

먼저 그대들 자신을 살펴 보십시오.

그대들이 과연 주는 자,

주는 도구가 될 자격이 있는지 살펴 보십시오.

 

진실로 말하건대,

주는 것은 생명이 생명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대들은 스스로를 주는 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단지 목격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대들 받는 이들이여,

사실 그대들 모두가 받는 이들이지만,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를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는것은

그대들 자신에게나 주는 이에게나 멍에를 씌우는 일입니다.

그보다는 주는이의 선물을 날개 삼아

그와 함께 날아오르십시오.

신세진 것에 지나치게 마음을 쓰는 것은,

아낌 없이 주는 대지를 어머니로 삼고 신을 아버지로 삼?/P>

그의 너그러운 호의를 의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